처방
대승기탕
大承氣湯
대승기탕은 《상한론》에서 단순히 ‘변비에 쓰는 처방’으로 놓이지 않는다. 토법·하법 뒤에도 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대변을 보지 못한 조문, 태양증이 사라진 뒤 조열·수족한출·대변난·섬어가 함께 남은 조문처럼 리실의 징후가 모이는 지점에서 등장한다. 후대 문헌은 이를 소승기탕·조위승기탕과 비교해 비·만·조·실의 조합으로 설명했고, 식적·오실과 같은 다른 분류로도 확장했다.
의서마다 달라지는 대승기탕의 기록
하법 이후에도 남은 리실의 조문
《상한론》 212조는 토법이나 하법을 쓴 뒤에도 병이 풀리지 않고 닷새에서 열흘 넘게 대변을 보지 못한 경과 속에서 대승기탕을 제시한다. 한 번 복용해 설사가 나면 뒤의 약을 멈춘다는 문장까지 붙어 있어, 처방명뿐 아니라 투여 뒤 반응을 살피는 운용 기록을 함께 전한다.
220조에서는 이양병병에서 태양증이 사라진 뒤 조열이 나고 손발에 축축하게 땀이 나며 대변이 어렵고 섬어하는 경우 하법으로 낫게 하며 대승기탕이 마땅하다고 적는다. 이 조문은 표증이 남은 상태가 아니라, 태양증이 끝난 뒤 내부의 징후가 모였다는 순서를 분명히 한다.
네 재료로 이루어진 구성 골격
《주해상한론》·《상한론조변》과 《금궤요략》의 확인 기록은 대황 4량, 후박 반 근, 지실 5매, 망초 3합이라는 네 재료와 분량을 공통으로 전한다. 대황은 술로 씻고 후박은 껍질을 벗겨 굽는 표기가 이어지며, 일부 기록은 지실에도 자법을 명시한다.
상한론조변의 다른 구성 기록은 같은 네 재료를 적으면서 ‘본경에는 망초가 없고 망은 박의 오자일 수 있다’는 판본 주석을 덧붙인다. 이는 망초를 임의로 빼야 한다는 현대적 지시가 아니라, 전승 문헌이 구성 글자를 어떻게 의심하고 교감했는지 보여주는 별도 근거다.
세 승기탕을 가르는 기준
《상한육서》는 비·만·조·실이 모두 갖추어진 경우 대승기탕을 든다. 후박으로 비를, 지실로 만을, 망초로 조를, 대황으로 실과 열을 다룬다고 재료별 역할을 설명한다. 이어 조위승기탕은 중초의 조·실·견, 소승기탕은 상초의 비·실이라는 식으로 구성의 추가와 생략을 병기해 세 처방을 비교한다.
《상한소원집》은 큰 사열이 있으면 대승기탕으로 공격하지만, 진액이 상하고 위가 건조해 대변이 어려운 비약에는 소승기탕이나 마자인환처럼 덜 급한 방식을 쓴다고 구별한다. 같은 대변난이라는 표면만으로 세 승기탕과 윤하방을 합치지 않는 후대의 경계다.
의학입문이 배치한 궐음의 열증
《의학입문》은 궐음의 한증과 열증을 나누는 설명에서 수족이 잠시 차고 잠시 따뜻하며 대변이 실하고 소갈·번만이 나타나는 열증에 대승기탕을 배치한다. 이 기록은 상한론의 특정 조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육경의 표본과 한열을 설명하는 체계 안에 대승기탕을 다시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과 잡병서에서 넓어진 문맥
《동의보감》은 오실과 오허를 설명하면서 오실증에는 대승기탕에 마황을 더한다고 인용한다. 이때의 ‘대승기탕 가마황’은 대승기탕 원방의 구성과 합쳐서는 안 되며, 오실이라는 후대 분류 안에서 나타난 가감 기록으로 연결해야 한다.
《증치준승·잡병》은 숙식이 있는 경우 가운데 사람과 손상시킨 음식이 모두 열한 때 대승기탕으로 하법을 쓸 수 있다고 적고, 사람이나 음식의 성질이 한하면 마땅하지 않다고 경계한다. 이는 상한 조문을 넘어 식적의 한열을 구별하는 잡병 문맥으로 처방이 이동한 사례다.
의서에서 확인한 원문
상한론 · 토하 뒤에도 풀리지 않은 212조
傷寒,若吐若下後,不解,不大便五六日,上至十餘日,日...,大承氣湯主之。若一服利,則止後服。(212)현대어: 상한에 토하거나 하한 뒤에도 풀리지 않고 닷새에서 열흘 넘게 대변을 보지 못하는 경과에서 대승기탕을 주로 쓰며, 한 번 복용해 설사하면 뒤의 약을 멈춘다고 기록한다.
해설: 하법을 이미 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남은 내부 징후와 복용 뒤 반응을 함께 적은 조문이다.
상한론 · 태양증이 끝난 뒤의 220조
二陽并病,太陽證罷,但發潮熱,手足縶縶汗出,大便難而譫語者,下之則愈,宜大承氣湯。(220)현대어: 두 양경의 병이 함께 나타났다가 태양증은 사라지고 조열, 손발의 땀, 대변난과 섬어만 남으면 하법으로 낫게 하며 대승기탕이 마땅하다고 기록한다.
해설: 표증이 끝난 뒤 리실 징후가 모였다는 순서가 처방 선택의 핵심이다.
금궤요략 · 금궤요략의 네 재료
[大承氣湯方:大黃四兩(酒洗) 厚朴半斤(炙去皮) 枳實五枚 芒硝三合현대어: 대황 4량은 술로 씻고, 후박 반 근은 구워 껍질을 벗기며, 지실 5매와 망초 3합을 쓴다고 적었다.
해설: 상한 주석 계열과 비교할 수 있는 금궤요략의 구성 기록이다.
의학입문 · 궐음의 열증에 배치한 기록
少陽三焦相火為本,游行一身,故微熱;膽為標,耳聾、脅痛,寒熱、嘔而口苦,緣三焦無形,膽無出入之路,故從中治,標本俱小柴胡湯。太陰肺為標,咽乾身目黃;脾為本,腹滿痛,謂之腑熱,咽乾、腹滿、手中溫者,桂枝加大黃湯,或大柴胡湯;身目黃者,茵陳湯;胸滿者,瓜蒂散;如自利不渴,或嘔吐者,屬臟病,理中湯、丸。少陰心為本,故舌乾口燥,或繞臍硬痛,或心下硬痛,或下利純清水,或譫語便閉,小承氣湯;腎為標,面寒如刀刮,唇青不渴,吐利,胸腹絞痛,四肢厥逆,指甲黑,蜷臥,身如被杖,古薑附湯。厥陰心包絡為標,故舌卷、厥逆、冷過肘膝、吐沫嘔逆、不渴、小腹絞痛者,為寒,三味參萸湯、四順湯;肝為本,主男子囊縮,女子陰挺乳縮,或手足乍冷乍溫,大便實,消渴煩滿者,屬熱,大承氣湯;似瘧不嘔、二便自調者,必自愈;不愈脈遲,有汗者,小建中湯;脈澀無汗者,桂麻各半湯。其囊,乳縮証,寒証亦有之。此萬法之祖也,學人於此而一悟焉,則病機到手矣﹗自非仲景《玉函》內秘,其孰能與於斯乎﹗此後汗、吐、下、溫、和解諸方,不甚詳載,止言宜汗、宜吐、宜下、宜和,悟之。해설: 의학입문은 궐음의 한열을 나누는 체계 속에서 대변실·소갈·번만이 있는 열증에 대승기탕을 배치한다.
동의보감 · 오실에 더한 마황
- 黃帝曰願聞五實五虛岐伯對曰脈盛皮熱腹脹前後不通悶瞀此謂五實脈細皮寒氣少泄利前後飮食不入此謂五虛帝曰其時有生者何也岐伯曰漿粥入胃泄注止則虛者活身汗得後利則實者活此其候也[內經] - 五虛之證予嘗治數人在下則泄瀉不止在上則吐痰不止者皆死盖氣脫無所管攝故也早用參朮膏救之十活一二五實之證大承氣湯(方見寒門)加麻黃救之[綱目] ☞ 5가지 실증과 5가지 허증[五實五虛]해설: 동의보감의 구절은 대승기탕 원방이 아니라 오실증이라는 분류에서 마황을 더한 가감 기록이다.
의서별 처방 구성
금궤요략의 대승기탕
金匱要略의 大承氣湯 처방으로 대황(四兩), 후박(半斤), 지실(五枚), 망초(三合)가 배열된다.
금궤요략 전사본 · 212–214행
금궤요략방론의 대승기탕
금궤요략방론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금궤요략방론 전사본 · 171–173행
금궤옥함요략집의의 대승기탕
금궤옥함요략집의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금궤옥함요략집의 전사본 · 384–386행
상한론조변의 대승기탕
상한론조변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상한론조변 전사본 · 1401–1405행
상한론조변의 대승기탕
상한론조변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상한론조변 전사본 · 3851–3853행
상한론집의의 대승기탕
상한론집의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상한론집의 전사본 · 3833–3835행
주해상한론의 대승기탕
주해상한론에 실린 대승기탕의 구성 기록입니다. 재료명과 분량, 법제 표기를 이 출전의 원문 순서대로 나누었습니다.
주해상한론 전사본 · 2360–2369행
출전별 구성에서 보이는 차이
주해상한론·상한론조변·상한론집의에서 4건의 구성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재료와 분량을 합쳐 하나의 표준 처방으로 만들지 않고, 각 기록을 독립적으로 비교합니다.
모든 기록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재료는 대황·후박·지실·망초입니다.
재료의 배열과 분량을 함께 보면 서로 다른 구성 표기가 2가지입니다. 이 차이는 판본·인용 맥락을 더 대조하기 위한 단서이며 처방 동일성 판단을 뜻하지 않습니다.